비니가 학교를 나서자마자 친구하고 논다며 가방을 벤치에 던져놓고 달려가 버렸다. 덕분에 난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시간 동안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어린이집을 이 동네에서 안다녀 지인이 없는데다 코로나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든 같이 놀면 대환영이다. 그래도 늘 함께 노는 단짝 친구가 있어 그 친구랑 논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다. 엄마의 친분으로 억지로 놀아야 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친구 말고도 남자아이들 서너명이 더 끼었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어몽어스 놀이를 하자고 하는데 비니는 어몽어스를 모른다. 그 게임은 초2가 하기엔 부적절해보여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수의 인터넷 게임은 죽이고, 부수고, 팻이라며 질질 끌고 다니는데 그런 게임을 의식없이 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지켜보지 않는 부모도 많다. 게임이 결국 실제 놀이로 이어지는데 좋지 않은 상황이 자주 발생되기도 한다. 놀이 활동을 지켜보지 않는 부모는 이것 또한 알아채지 못한다.
놀이가 길어져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몰입한 나머지 아이들이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찾으려고 일어서는데 풀숲에서 아이들이 나온다. 태연히 그네를 타러 가길래 잘 놀고 있구나 싶어 책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일하러 갈 시간이 되어 아이에게 한 시반이야, 이제 가자. 했더니 순순히 가잖다. 왠일인가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할 얘기가 있단다. 지금 말하라니까 집에 가서 얘기하잖다.
비니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눈 앞이 하얘졌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하지? 학교에 말할까? 그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서 얘기 해야 하나? 한 번은 넘어가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비니의 이야기는...
어몽어스 게임을 하자는데 비니는 그게 뭔지 몰라 듣고 있었다. 설명을 듣고 시작! 했는데 한 아이가 비니를 잡으며 술래라고 해서 비니가 바보야, 그거아냐. 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비니 목을 조르며 죽여버린다. 나 태권도 검은띠야.라고 했다고 한다. 너무 깜짝놀라서 알았다고 했단다 그 풀숲에서.
바로 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몰랐다니 나한테 너무 화가 나고, 이런 일을 하고도 태연히 잘가라고 인사한 그 아이한테도 화나고, 그 아이가 그러고 있는 동안 엄마들이랑 다른 아이 뒷담화를 하고 있던 그 무리에게도 화가 난다.
고작 초2인데...9살이긴 하지만 코로나로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해본적도 없는....그래서 노는 수준이 여전히 7살인 아이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의 몸에 쉽게 손을 대는 것도, 목을 조르며 협박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니에게 너는 어땠냐고 하니 그런 행동을 해서 깜짝 놀랐단다. 벌써 이런일이 생길 줄 몰랐다.
얼마 전, 비니가 어릴 때 놀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비니랑 둘이 놀다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지 말도 없이 집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30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길래 그 친구 엄마에게 가봐야 하는거 아니냐고 했더니 내버려 두란다. 내버려 두는게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사도 못하고 왔다. 본인 아이의 사회성이 떨어져서 걱정되지만, 다른 애들한테 당할 애는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꼭 폭력을 써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게 아니다. 어른들 세계에서는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의 세계관이 어른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사회성이 생기도록 가르쳐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다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못하고, 피해자만 안 되면 된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워낙 학폭 뉴스가 만연하니 맞고 오지 말고, 누가 때리면 넌 더 세게 때리라고 가르친다는 부모들도 많다. 아이들끼리 크면서 의견 대립으로 싸우는 일이 많겠지만 그게 주먹다짐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치 학폭을 당한 것 마냥 화가 나고 어찌할바를 모르겠어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럴때 어떻게 대처해야 비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그 아이는 다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지 도무지 좋은 생각이 안난다. 이럴 때 난...엄마의 자질이 안되어있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같이 있어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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