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웨딩, 나도 해볼까?
내 사회 생활 첫 직업은 국제회의 기획사였다.
우연히 접어든 길이었지만 그 마력과 같은 매력에 빠져들어 5년간이나 내 몸과 마음, 두뇌를 축냈다.
수 십개의 행사를 치르면서 성공적인 행사를 치르고나면 찾아 오는 자부심과 긍지 이면에 양심의 가책도 뒤따랐다.
그건 바로 행사 후 남은 어마어마한 쓰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종이, 일회성 무대를 위한 목재, 먹고 난 뒤 버려지는 포장재들, 수백을 들여 꺾어 놓은 생화......
최근에는 친환경, Green Friendly, 그린, 에코 등의 단어가 유행하면서 친환경적인 국제회의를 만들기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행사 특성에 따라 격있고 고급스럽게 보이면서도 에코를 부각하는 것은 역부족이어서 '그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린'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결심한건 내가 PM이 되면 '진짜 환경과 친한'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내 예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서른 두살, 이 일을 한지 5년 차, 그리고 이 분야를 떠나기로 결심한 지 두어달이 지난 시점이다.
2013년 3월 결혼식을 앞두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기대하던 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예비 남편에게 에코 웨딩에 대해 무식하게 설명해대고 친환경적이면서 우리식대로 의미있는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입시켰다. 다행히 그는 전적으로 내 편이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모호한 기색은 있었으나 일단 허락이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감사.
한달여간 에코웨딩 관련 업체와 상담을 하기도 하고, 국내외 사이트를 뒤져 에코 웨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내가 에코웨딩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로써 그간의 양심의 가책을 얼마간은 씻을 수 있을 것 같다. 에코웨딩은 가난한 웨딩이 아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겉치례는 없고, 필요한 건 다 있지만 낭비는 없는 자연과 함께하는 작은 몸짓이다. 에코웨딩을 위해 우리 예비 부부는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먼저했다.
1. 모두가 공감할 것: 에코 웨딩을 가난한 웨딩으로 여겨 하객 중 누구도 실망하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필요한 것만 챙길 것: 견물생심이라고 좋은 걸 보면 욕심내고 싶은게 사람마음이지만 필요치 않으면 과감히 잘라낼 것이다.
3. 기억에 남을 것: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행사'가 아닌 뜻깊은 부부의 연을 맺는 날이 될 수 있도록 컨텐츠에 신경쓸 것이다.
힘든 과정이 될테지만 또한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린다.
2013년 3월24일까지 D-111일.